허름한 동네로 이사 온 한 가족. 도착한 첫날부터 낯익은 주변 풍경에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붉은 연기와 종소리의 불길함은 기시감처럼 비극의 운명을 암시한다.‘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과 엔딩이 교묘히 맞물리는 순환 구조의 형식미가 돋보이는 작품.
별 내용이 없는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홀린 듯이 매혹에 빠지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그리고 몇 번을 보다보면 더욱 빠져드는 영화가 있다. 이런 영화는 대부분‘깊은’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가 바로 그런 종류의 영화이다. 의 내용을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부질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 지독히도 불행했던 연화라는 아이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고 홀로 떠난다는 내용이다. 이런 단순한 이야기가 빛을 발하는 것은 이 영화에 깔린 미장센이 탄탄하기 때문이지만, 그보다는 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색채 때문이다. 윤회나 인연이라는 말을 금방이라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인물들은 업보를 안고 살아가고, 또한 그것을 대물림한다. 그리고 마침내 소녀의 어머니의 행로는 끊어지지 않고 다시 소녀의 행로로 이어진다. 여기서 비극이 발생한다. 이처럼, 인생이라는 업보를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우리네 생의 한 단면을 지독히도 우울하고 불교적인 정서로 표현하고 있는 영화이다. 주인공인 연화라는 아이의 이름, 즉‘the flower of smoke’도 불교의 교리처럼, 세상의 모든 업보를 태워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영화는 미묘한 사운드와 이미지의 조각으로 이 모든 것을 형상화해 낸다. 그런데 과연 연화는 모든 업보를 끊을 수 있을 것인가. 궁금증을 푸는 방법은 직접 이 영화를 보는 것이다. (강성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