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멕시코 카르텔 보스의 여자인 말레나와 비밀스런 사랑을 나누던 조직원 윌리는, 보스로부터 도망친 연인과 재회하기 위해서 캐나다 농장의 계절 이주 노동자로 고용된다. 얼핏 긴박한 누아르와 뜨거운 멜로를 섞어 놓은 것처럼 시작한 영화는, 윌리가 노란 버스를 타고 리처드의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흔들리는 가족 관계를 포착하는 가족 영화이자 타자화된 계절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을 대변하는 디아스포라 영화로 순식간에 변모한다. 사랑을 찾아 위험을 무릅쓰는 주체적인 성격의 주인공이지만, 농장의 가족들에게는 순간의 필요를 채워주는 대체 가능한 대상에 불과하다. 농장주인 리처드에게 그는 값싼 노동력이고, 아내 줄리에게 그는 소원해진 남편과의 관계를 대신할 욕망의 분출점이며, 딸 레아에게 그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 저지르지도 않은 누명을 손쉽게 뒤집어씌울 수 있는 소모품이다. 한 남자의 드라마틱한 서사를 통해 장르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임금의 차이가 가치의 차이와 같은 뜻이 아님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2022년 제10회 디아스포라영화제/ 기형민)